「알아. 한눈에 알아봤어. 넌 많이 좋아졌더라. 맘에 드는 일을 찾은 것 같아. 거짓말을 한 건 나만이 아닐 텐데. 안 그래? 너도 내게 그랬잖아. 어쨌든 축하해. 널 귀찮게 하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었어. 오늘도 마지막으로 널 보러 온 거야. 이제는 죽어도 너를 찾아오지 않을 거야. 정말이야. ……나 말이지,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어. 옛날에 살던 그 집, 다니던 그 직장, 요즘도 게걸스럽게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고, 한 남자와 만나 헤어질 때까지 극장에 가고 여관에 가고 그래. 후훗, 그렇다고 한겨울날 동물원에서 이별하지는 않지만, ……난 아직도 어둠에 갇혀 있어. ……다르게 말할게, 네가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궁금했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서른이 되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더라구. 죽기까지 이런 식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그러자 제일 먼저 떠오른 게 너였어. 너는 어떨까? 슬프게 젖은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아직도 나처럼 별수없이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고, 또 해낼 수 있는 무엇을 찾았을까? 행복할까? ……그래, 그게 다였어.」
한미FTA 관련 백분 토론을 보기 위해 TV를 틀었다가 (70번은 재방송 했을듯한) 문학산책 이응준의「Lemon Tree」로 빠지고 말았다. 대개 그렇다. (체크 박스가 아닌) 라디오 버튼의 질문지가 주어지면 현실보다 몽상을 택할 테니. 그리고 그 주파수는 그리 변하는 법이 없었다. 7년전 읽은 이야기를 다시 보며, 이제 어렴풋이 "나"를 이해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패배감으로 주눅들어 있는 내 고요함의 도플갱어"는 "같은 그림자에게 드리우길 원"했을 뿐이었다. 내게 건내는 "후최면암시"는 키가 작거나 혹은 크거나, 사진과 다를 바 없을 것 같은, 술자리에서 많은 친구와 수다를 떨다 취하면 성격이 변하는, 친해지고 싶은, 평생 독신일 것 같은 이웃이다. 실상은 "낯선 나라의 오지로 이민 가버리는 상상" 처럼 코스프레를 꿈꿀 뿐이지만. 불안해진다는 것, 감당이 아닌 수행할 고통이 있다는 문장이 날 사로잡는다. "인화할 수 없는 작은 어둠" 속에서 "고사 직전의 꿈"을 가꿔내 되살려야 한다. "그래, 아무것도 아닐 순 없다."
| 그래, 아무것도 아닐 순 없다. [나의 서재]
(4) comments
2006/06/30 03:28
2006/06/30 03:28
tags: Book, Lemon Tree, Novel, short story, 레몬 트리, 이응준
Posted by lunamoth on 2006/06/30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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