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록이 만들어진 진짜 목적을 들었던 순간을 생각한다. "자살, 탈영, 소위 구타 및 가혹행위 등 각종 사건, 사고 발생시 그 동기 규명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던 애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 그렇게 절절한 사연들은 도식적인 통계표로 변모해 갔을 것이다. 가정불화, 복무염증, 애인변심... 몇 퍼센트, 몇 퍼센트, 몇 퍼센트...
간부들이 보니 허튼소리 쓰지 말라던 고참의 귀띔과 검열을 앞두고 밀린 일기 마냥 해치웠던 일들도 머리속을 스치운다. 조만간 뉴스에서 그 수양록 이란걸 보게될 듯 싶다. 얼마간의 내용이 들어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소대장이 석태를 위해 해준 일이라고는 가끔씩, 이석태, 뭐 애로사항 없나, 하고 지나가는 말로 물어봐 준것뿐이었다. 애로사항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면 왜 애로사항이겠냐, 석태는 그렇게 그를 비웃으면서,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곤 했었다. /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말로 해결될 일 따위를 가지고 누가 탈영을 하거나 목을 매겠는가.
- 김영하,「총」